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튀르크 전쟁 (문단 편집) === 헝가리 전역 === 프랑스의 공격을 우려하던 빈 조정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제국과의 휴전을 원하였으나 연합군의 통수권을 지닌 얀 소비에스키는 기세를 몰아 진격을 강행하였다. 10월 7일, [[에스테르곰]]을 향해 진격하던 폴란드 군은 도나우 북안의 슈투로보에서 오스만 제국군의 습격에 직면하여 2천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로렌 공작 샤를 5세가 이끄는 [[제국군(신성 로마 제국)|제국군]][* 여기서 제국군이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명령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영방 국가들이 파견하여 소집된 병력을 의미한다. [[독일어]]로는 Reichsarmee.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이 점점 영방국가화가 가속되며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 이후부터는 거의 [[황제군|오스트리아군]]과 동일시되었다.]이 당도하였고, 2만 8천의 연합군은 반격하여 오스만군을 격퇴하고 슈투로보를 장악하였다. 도나우강을 건넌 연합군은 에스테르곰을 포위하였고, 10월 28일 지휘관 이브라힘 파샤가 항복하였다. 이로써 헝가리 북부의 주요 도시 에스테르곰은 78년만에 오스만 지배에서 벗어났다. 그후 샤를이 기습적으로 [[부더페슈트|페슈트]]를 점령했으나 악천후로 인해 곧 철수하였다. 12월 카라 무스타파 파샤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교살되었다. 1684년 초엽 [[교황]]의 [[제창]]으로 헝가리 해방을 목표로 한 [[신성 동맹]]이 결성되었다. 폴란드, 오스트리아 뿐만 아니라 루스 차르국, 스페인 베네치아, [[토스카나 대공국]], 몰타 기사단 등이 가입하였으며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던 에르데이 공국과 몰다비아 공국에게도 최소한 중립을 약속받았다. 1684년 봄 오스만 제국의 동맹인 프랑스가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룩셈부르크]]를 공격해 점령하였지만, 교황의 중재로 더이상 싸우지 않고 [[레겐스부르크]]에서 20년 간의 휴전에 합의하였다. (8월 15일) 한편 이미 6월 18일 출정한 연합군은 [[비셰그라드(헝가리)|비셰그라드]]를 점령한 후 남하하였고, 이에 부더의 무스타파 파샤 역시 2만 대군과 북상하였다. 6월 27일 바츠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군은 [[티미쇼아라|트므슈바르]] 총독 아흐메트 파샤를 포함한 3천의 사상자를 내며 패배하였고, 포격 끝에 바츠 수비대가 항복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